고통 구경하는 사회 (2023, 김인정)

한걸음 365 2023. 12. 26. 22:06

고통 구경하는 사회

김인정


 

 

 

- 문장 되새기기 -

 

 


 

0. 들어가며

 

16p
매체가 고통의 스펙터클에 일정 분량의 시간을 할애하기를 애호한 게 먼저였는지,
대중이 뉴스 안에서 일정한 양 이상의 고통을 보기를 원한 게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다.
어느 분야에서건 수요와 공급은 서로를 북돋고 창출해 낸다.
무엇이 먼저였든, 언론은 오늘도 안방의 브라운관 앞까지,
손안의 스마트폰 화면 앞까지 고통을 질질 끌어다 놓는다.

 


 

1. 새롭고 특별한 고통이 여기 있습니다

 

28p
'아무것도 하지 않는 카메라'에 관한 오랜 공포가 있다.
찍고 있지만 상황을 냉담하게 기록할 뿐,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 카메라.
...
공포의 근원은 이걸 찍어서 보여준 뒤에도 내가, 이걸 본 뒤에도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못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36p
나의 시선이 구경이 될 수 있다는 걱정에 빠져서 고통을 보는 일 자체를 멈춘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인간성 실패의 시작일 것이다.

우리의 눈은 움직일 수 있다.
자랑스럽지 않은 이유로 머물렀다고 하더라도 더 나은 곳으로 분명히 이동할 수 있다.

 

49p
인터넷이 불러온 진짜 문제는 우리를 기다리는 죄책감의 총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자각은 죄책감과 무력감의 원천이 된다.

동시에 사건 바깥에서 비난하는 무고한 위치에 자신을 놓고 정의감에 빠져들거나,
거리감을 핑계로 죄책감으로부터 도망하기도 쉽다.

 

53p
편향은 온라인에서 우리가 드러낸 자기 정체성과 취향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엉망이기에 우리의 소망 역시 엉망일 수 있다는 걸 잊고,
자신의 엉망이 반영된 볼거리를 편하게 즐길 수 있게 하는 기술이 완성형에 가까워졌다.

 


 

2.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94p
흔한 사고일수록, 어디서나 보이는 사고일수록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지고,
주기적으로 비슷한 소식을 들은 나머지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패러독스에 빠진다.

 

96p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지면과 화면에 잘 옮겨진 타인의 고통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사이에
'보여줄 수 없는 고통'과 '보이지 않는 고통'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

 

120p
보도란 '누군가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말하는 일이고,
그 하나하나의 고통 역시 누군가에게 속한 것이기에,
취재를 통해 고통에 침범하는 일은 결국 누군가의 삶에 침입하는 일이었다.
어떤 고통이 문제라고 말하는 건,
고통이지만 끝내 당신의 것인 무언가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36p
선행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계층의 특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 개인의 독특한 선함의 질감을 놓치지 않도록,
악행을 바라볼 때는 개인의 악함으로는 다 포착되지 않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과 모순에
고루 책임을 묻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3. 나와 닮지 않은 이들의 아픔

 

146p
이 열없는 고백은, 비유의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불쾌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공감을 위해 닮음이라는 교두보를 찾아내려는 시도였다 한들
도리어 밀어내기와 배타성이라는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이유고,
편견과 한계를 노출하며 자주 무너지는 까닭이다.

 

153p
나와 닮은 것들에 대한 연민은, 자꾸만 나에게로, 나라는 좁은 둘레로,
가족으로, 우리 민족으로, 우리 인종으로, 우리 계층으로, 우리나라라는 비좁은 단위로 파고들어
그 바깥을 바라볼 수 없도록 우리의 이성을 빨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생산하는 뉴스, 그리고 우리에게 도달하는 뉴스는 나/우리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일 수 있을까?

 

167p
고통을 언제 보여줘야 하고 언제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고통에서 눈을 때지 말아야 하고 응시를 참아내야 하는가?
고통을 얼마나 보여주고, 또 가려야 하는가?
보여주기의 윤리와 보여주지 않기의 윤리는 누구를 지키는 것이며
누구를 위한, 향한 것인가?

 

202p
물론 '갈등'이나 '논란'이라는 말을 제목으로 단 모든 기사가
중립을 가장하는 가면을 쓰고 있다는 말은 아니며,
실제 갈등 상황을 요약해 정리할 때에는 당연히 필요한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제목의 기사들을 약간은 미심쩍은 눈으로 보게 될 때가 있다.

중립적인 척하는 데 불과하지는 않은지, 맥락을 자르지는 않았는지,
갈등과 논란을 단순히 중계하고 있지는 않은지,
중계한다는 명분으로 갈등을 재생산하거나 오히려 부추기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니까 언론 스스로가 갈등을 만드는 행위자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되어서다.

 


 

4 . 세계의 뒷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248p
여러 질문이 해결되지 못한 채 내 안을 시끄럽게 했다.
한국 사회를 취재할 때는 자주 잊고 있었던 질문들이기도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잘 이해하고 있나?
나는 과연 이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적합한 사람일까?
... 이 고통을 이야기할 권리는 대체 누구에게 있는 걸까?

 


 

5. 나가며

 

269p
이제 이 책은 인쇄에 들어가 마치 종이 위에 고정되어 버린 듯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올 것이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에 뉴스에 관한, 게다가 뉴스의 윤리에 관한 책을 낸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에 대해 문득 생각하다가,
뉴스를 완성해 방영하던 때와 비슷한 마음을 품기로 마음먹었다.

이 글이 여전히 움직일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하자고.

이 책이 조금이라도 건드린 뉴스의 뒷면이 있다면,
이 뒤에 사람들이 말을 더해서 대화를 시작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이 글이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게 된다면
아직 끝이 아닌 거니까.

 

 

 

 

* 본문 이미지 출처

  : (알라딘) 고통 구경하는 사회 (http://aladin.kr/p/w4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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