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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시작 (2023.01.01)

한 해의 시작 다른 해와 다르게 유독 고요했던 1월 1일. 새로운 해가 찾아왔다는 벅찬 느낌도, 올 한 해가 지나갔다는 아쉬운 느낌도 없었다. 나이가 늘었다는 감각도 없었고, 설레임을 담은 새해 목표 같은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날짜는 모두의 의사소통을 위해 규정된 그 무언가. 그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보통의 또 다른 하루가 지나갔다. 일기장을 들추어 보았다. 작년 이맘때쯤의 내가 보였고,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지난 한 해의 목표, 바로 '덜어내기'였다. 세상의 그 모든 것들에 압도되는 감정을 느끼고 있을 그 어느 시점에 내가 날 살리기 위해 선택한 목표. 내 주변을 이루는 것들을, 내 마음 속의 여러 생각들을. 덜어내고, 비워내고, 고르고 ..

2024.01.04

소중한 것들 (2023.12.28)

소중한 것들 하루의 짧은 만남 속에서 피워낸 한 마디가 소중하고, 어쩌면 다시는 마주치지 못할 인연에게 보낸 한 번의 미소가 소중하다. 항상 스쳐지나가다 드디어 오롯이 마주하게 된 풀잎 하나가 소중하고, 이 날, 이 시간, 이 공기 속에서 바라본 하늘은 이것이 유일하기에 소중하다. 그간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방향으로 내딛은 한 걸음이 소중하고, 빛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 얻어낸 작은 깨달음 하나가 소중하다.

2023.12.29

그리움 (2023.11.17)

그리움 그립다. 보고 싶다. 그 말 한 마디를 못해 가슴이 미어지는 날이다. 잘 지낸다고 말하고 싶고, 그렇지 않아도 바쁠 날들에 나의 한숨 섞인 말들은 짐이 될 것만 같다. 오늘도 이런저런 말들을 한 움큼 삼켜내고 만다. 올해 들어 소중한 이들에게 자주 썼던 단어, '평안'. 그들은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자주 건넸던 말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서툰 나는 아이유의 '밤편지' 가사를 인용해서, 이 밤, 반딧불을 그들의 창 가까이 보내고 싶다. 그래, 사랑한다는 말이다.

2023.11.17

관계 (2023.11.16)

관계 해가 지날수록 나를 오롯이 아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 같다. 새롭게 만나게 된 이들과는 대부분 비즈니스적으로 맺어져 피상적인 대화가 주를 이루고,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들과는 각자의 스케줄로 점차 그 연락과 만남의 주기가 길어지고 있다. 어렸을 적에는 대부분 학교나 학급 단위로 다같이 움직이고 많은 시간을 함께하니 그만큼 공통적으로 나누고 공감할 이야깃거리들이 많았지만, 대학교 이후로는 각자 배우는 일도 하는 일도 달라져 공통분모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어려워지고, 어렵게 꽃피운 대화 주제도 금세 사그러들고 만다. 매일 근심 섞인 하루를 보내고 힘겹게 몸을 누이지만 모두가 각자의 짐을 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말없이 엷은 미소만을 띄우며 나의 짐들을..

2023.11.16

질문 (2023.11.01)

질문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정신없이 지나가는 세상 속에서, 이 질문을 놓치게 되면 그 때에 주변에 존재하는 강한 무엇인가에 속절없이 휩쓸려 버리게 된다. 나는 지난 1~2주간 내가 원하던 '어떻게'의 모습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한동안 애쓰고 지친 나를 달래주고 보듬어주지 못한 채 계속해서 나를 밀어 붙인 탓이다. 일종의 번아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지난 2주를 내키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보내 왔다. 노력한 자에게 주어진 달콤한 휴식이었다 여길 수도 있겠지만, 막상 꼭 해야만 하는 일과 피로에 젖어 제대로 쉬거나 즐기지도 못했던 것 같다. 충분히 마음을 보듬어주며 쉬는 시간을 더 가지면 좋겠지만, 다음 도약을 위해 다시 '어떻게'의 질문을 붙잡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23.11.02

감정 (2) (2023.08.20)

감정 이따금씩 찾아오는 일련의 감정들이 있다. 간결하게 표현해내기엔 너무도 오래된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어 제대로 설명조차 할 수 있을까 싶은 감정들. 그렇게 나는 이러한 감정들을 끊어내지도 못하고, 표현하지도 못하고 그저 끌어안고 괴로워만 하고 있다. 이 감정들에 대해 현재 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외면, 그리고 망각뿐이다. 다 털어내고 잘 잊고 지내는 듯 하다가도 예상치 못한 시점에 불쑥불쑥 튀어나와 머릿속을 잔뜩 헤집어 놓고 가버리는 이 감정들은 그 어디로도 향하지 못하고 갈 곳을 잃은 채 마음 한 구석에 하나둘씩 쌓여가기만 한다. 그렇게 곪아가겠지. 결국 이것들이 날 어디로 이끌지 몰라 그것이 두렵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괜찮지 않다. 나는 오늘도 아프다.

2023.08.21

미소 (2023.07.14)

미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누군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내보이며 이야기를 하는 순간을 포착하곤 한다. 곡선을 그리며 한껏 올라간 입꼬리.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빛. 한층 들뜨고 신나있는 어조. 이러한 모습에서 이야기하는 대상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진실로 사랑하는 것에 대해 논하고 있기에, 그 사랑이 겉으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 내가 미소지으며 열성을 다해 이야기하곤 했던 것들, 나도 모르게 사랑을 담뿍 담아 읊어냈던 것들을 되새겨 본다. 이러한 되새김과 함께, 입가에는 충만한 미소가, 마음 속에선 깨달음과 경탄이 울려 퍼진다. 아, 이것들이 나를 살게 하는 것인가 보다.

2023.07.16

거리 (2023.06.17)

거리 마음 속에서 가까운 거리에 머물던 누군가는 그만큼 짙은 향을 남기고 가고, 가까운 거리에 머물던 또 다른 누군가는 마음 한 구석을 깊게 베어내고 간다. 상대방과 나의 거리가 가까울 수록, 향은 더 짙어지고, 상처도 더 깊어진다. 언젠가 그 어느 날, 잔뜩 가시를 품게 되어 내 입에서 나오는 말, 내가 행하는 행동들이 그 어떤 것으로도 부드럽게 포장하기 힘들 만큼 날카로워 질 때면, 난 잠시 그들에게서 멀어진다. 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기에. 나 또한 깊은 후회 속에서 몸부림치며 나 자신을 미워하고 싶지 않기에. 이런 마음이 충분히 전해지지 못한 것일까. 그렇게 시야에서 사라진 나를, 그들은 애타게 찾는다. 내가 한 보 물러나 있는 것을 보고 두 보 더 가까이 온다. 나는 이에 네 보 더..

2023.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