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누구일지라도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
10화의 한 장면에서는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앓고 있어 은호와 혜리의 삶을 번갈아 살던 은호와
은호의 또 다른 인격인 혜리를 애타게 기다리던 주연이 오랜만에 재회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주연은 오랜만에 마주한 은호를 보고 다음의 대사를 읖조린다.
"혜리 씨...
혜리 씨예요, 은호 씨예요?
근데... 사실 난 상관없어.
전 진짜 상관없어요.
혜리 씨가 그 누구일지라도."
그리고는 멀찍이 서 있는 은호를 향해 주연은 큰 목소리로 외친다.
"전 상관없어요, 혜리 씨.
왜냐하면, 난 그냥 혜리 씨가 있어주기만 하면 되거든.
내 옆이 아니어도, 살아서 건강하기만 하면, 난 그걸로 충분해요.
날 사랑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 숲으로 들어간대도, 난 괜찮아.
원하면 거기 내가 같이 가줄 수 있어요.
나 진짜 다 버리고 같이 가줄 수 있어요.
그딴 건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혜리 씨.
왜냐하면 전요, 혜리 씨.
처음부터 혜리 씨가 그 누구라서 좋아했던 게 아니거든.
그저... 이런 내게 와준 사람이라.
내가 혜리 씨를... 그래서 좋아했던 거고.
그래서..."
은호는 주연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말없이 성큼성큼 다가가 주연을 세게 안는다.
난 이 장면을 보고 한참을 울고 말았다.
나에겐 저런 말들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다.
내가 누구든 상관없다고. 어디서 무얼 해도 괜찮다고.
어디서 무얼 하든 함께 해 줄 수 있다고.
내가 그 누구라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은호에게 어느 날 반짝 나타난 주연.
그리고 그 주연이 은호와 혜리에게 준 사랑.
나도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나도 이렇게 사랑해줄 수 있을까.
드라마의 대사가 글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주연의 대사를 듣고 느꼈던 감정을 꼭 이렇게 글로 남기고 싶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나는
나도 이런 사람을 만나 이런 사랑을 받아볼 수 있기를,
반대로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 이런 사랑을 줄 수 있기를 바라 본다.
+ 해당 장면의 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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