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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2023.06.16)

말 손에 움켜쥘 수 없는, 말이 가진 힘은 실로 날카롭다. 어떤 말들은 위태롭게 경계를 밟고 서 있는 한 사람을 다시 세상 속으로 끌어오기도 하고, 어떤 말들은 가슴 속을 깊게 할퀴어, 한 사람을 벼랑 끝, 그리고 그 너머로 무참하게 내몰기도 한다. 그렇기에 매 문장 하나에, 단어 하나에, 글자 하나에 신중함을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남은 날들 동안, 이왕이면 서로에게 아무런 울림도 주지 않는, 무색무취의 그저 흘러가는 말들보다는 한 사람이 오늘의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그리고 또 다른 내일을 꿈꾸게 하는 말들을 많이 나누다 가면 좋겠다. 그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2023.06.16

무너짐 (2023.06.10)

무너짐 때로 우리는 슬퍼할 시간조차 없다며 목 끝까지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재촉하곤 한다. 하지만 가끔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을 때, 세상의 그 어느 한가운데 서 있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일 때. 억지로 반대 방향으로 힘을 주어 무너지려는 것을 억누르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무너지고, 주저앉아 마음껏 울분을 토해내고 통곡하며, 충분히 아파하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나의 무너짐을 인정하고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응축되어 있던 감정들을 분출해내고 나면 현실 속에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언정. 족쇄처럼 나를 붙잡고 있던 응어리가 풀어지고, 나를 짓누르고 있던 무게가 조금은 덜어지는 듯 싶다. 그렇게 마음의 짐이 덜어진 자리에는 여유가 들어설 공간이 생겨..

2023.06.11

오해 (2023.05.19)

오해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꾹꾹 눌러 삼켜버린 말들. 마음을 들춰내는 질문에 흔들리는 눈동자.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는 두 눈. 진실을 꺼내지 못해 에둘러 건네는 다른 말. 그렇게 또 한 번 가려진 진실이자 진심. 누구를 위해 숨겨진 진심일까. 이렇게 켜켜이 쌓여간 오해를 풀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올까. 이번 생이 지나기 전에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어쩌면 다음 생에야 이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게 될까. 어쩌면, 그리고 아마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로.

2023.05.23

영원 (2023.05.10)

영원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 그 모든 것은 결국 바람에, 세월에, 이 혹독한 현실에 빛바래고 무너져 한 줌의 재가 되어 버릴 것을. 무엇을 위하여 그리도 애썼나. 무엇을 위하여 그리도 고달팠나. 무엇을 위하여 그리도 고통스러워야 했나. 마음속 어느 한 켠 깊숙이에서는 영원을 바라는 불빛이 꺼지지 않지만. 이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다면, 순간을 잘 잡아야지. 반짝거리는 순간들을 모아다가 예쁘게 이어 붙어야지. 언젠가 이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렸을 때 마주한 현실에, 한없이 가슴 아파 눈물짓게 되더라도 아, 그땐 그랬었지 하며 그 끝엔 엷은 미소를 내어 보일 수 있도록. 이 모든 순간을 마음속에 한껏 담아 잘 새겨 놓아야지. 결국엔 모두 손에 쥘 수조차 없게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릴 것..

2023.05.13

사랑 (2023.04.27)

사랑 요즈음의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란, 상대방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라는 것인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에게 되묻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곁에 있든, 멀리 떨어져 있든, 자주 연락하든, 그렇지 못하든, 내가 진심으로 안녕을 바라는 사람들을 곱씹어 본다. 그들의 낮, 밤 모두가. 내딛는 모든 걸음걸음에 평안함이 있기를 바라 본다.

2023.04.28

통증 (2023.04.15)

통증 오랜 시간을 앞만 보고 달려오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전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다리에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아 계속 앞으로 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릿한 감각이 들어 다리를 내려다 보았다. 만신창이였다. 흙투성이. 멍들고 깨진 발톱. 벗겨진 살갗. 얼룩진 피. 그 와중에도 하염없이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 모든 광경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하고 난 뒤에야, 그제서야 통증이 느껴졌다.

2023.04.16

그림자 (2023.04.01)

그림자 그 모든 것이 나를 잡아먹을 듯한 괴물의 형상을 하고 있던 한낱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허황된 무언가에 불과했다고 해서. 그 모든 것들이 그저 그림자가 빚어낸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실에 위안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잔뜩 거대하게 몸을 부풀린 그림자를 보고 느꼈던, 나의 마음을 뒤흔들며,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그 감정 자체는 일순간에 깨끗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림자의 정체가 탄로나며 뿔뿔이 흩어져, 행적이 불분명해진 줄로만 알았던 그 감정들은 조용히 무의식 속에 숨어들어 비슷한 장면에서 다시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2023.04.02

색안경 (2023.03.18)

색안경 우리는 각자 나름의 색안경을 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색안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색안경이 어떤 빛깔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천국이 되기도, 지옥이 되기도 한다. 한 개인이 성장해온 환경에서부터 시작해 각자가 겪어온 서로 다른 경험들이 아주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우리의 색안경은 각자 나름의 빛깔을 띠게 된다. 이 덕분에 나에게는 보였던 것들이 상대방에게는 보이지 않기도 하고, 나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상대방에게는 당연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더불어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며, 서로 다른 감상과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점을 특별히 염두에 두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세상을 보고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 것 같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과..

2023.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