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시작
다른 해와 다르게 유독 고요했던 1월 1일.
새로운 해가 찾아왔다는 벅찬 느낌도, 올 한 해가 지나갔다는 아쉬운 느낌도 없었다.
나이가 늘었다는 감각도 없었고, 설레임을 담은 새해 목표 같은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날짜는 모두의 의사소통을 위해 규정된 그 무언가. 그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보통의 또 다른 하루가 지나갔다.
일기장을 들추어 보았다.
작년 이맘때쯤의 내가 보였고,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지난 한 해의 목표, 바로 '덜어내기'였다.
세상의 그 모든 것들에 압도되는 감정을 느끼고 있을 그 어느 시점에
내가 날 살리기 위해 선택한 목표.
내 주변을 이루는 것들을, 내 마음 속의 여러 생각들을.
덜어내고, 비워내고, 고르고 골라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자는 다짐.
보잘것없이 아주 적은 양일지언정
욕심 부리지 않고 매일 조금씩만 나아가자는 다짐.
그러한 나의 다짐이 비춰진 블로그 닉네임. 매일, 한걸음씩.
이 다짐을 기준으로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면 성공적인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많은 것들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만큼 많이 아팠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만 하는 현실에 한탄했고,
많은 것을 손에 쥘 수 없음에 한없이 괴로워했으며,
한동안은 매일매일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러한 덜어내기 끝에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
지나친 가벼움은 경계해야겠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던 것들의 무게는 내 숨을 옥죄어가고 있었다.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었다. 살기 위해서.
나는 고통과의 블루스를 지나 어렵사리 평온의 끝자락을 손에 쥐게 되었다.
새해에 대한 아무런 기대 없이 글을 적다 보니 올 한해에 대한 소망이 떠올랐다.
덜어내기를 통해 얻은 작은 평온과 계속 함꼐하는 것.
고요한 바다에 놓인 배 한 척처럼, 어디로든 갈 수 있되,
약간의 넘실거림,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싼 풍경들, 벌어진 우연들을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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